카메라로 기록하고 마음으로 읽는 사진 사진작가 강재훈
수천 마디 말보다 때론 한 장의 사진이 주는 울림이 더 크다.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라져가는 것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강재훈 작가를 만났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것도 힘들지만, 30년 넘게 한 분야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일 또한 매우 어렵다. 1987년부터 34년간 신문사 사진기자로 재직한 강재훈 작가. 사진은 그의 인생을 뒤바꿀 만큼 가장 좋아하고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카메라를 접했어요. 매형이 카메라를 건네주며 사진 찍는 법을 알려주셨죠. 그때부터 취미 삼아 꾸준히 사진을 찍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죠. 그게 바로 사진이란 걸 깨닫게 된 순간이었어요.”
오로지 사진에 대한 열망으로 대학교 4학년 때까지 전공하던 공부를 포기하고 사진의 길을 새롭게 선택한 강재훈 작가. 군대까지 다녀오고 졸업을 불과 1년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결단이었다. 이후 신문사 사진기자로 첫발을 내딛으며 시작된 그의 사진 인생. 현장 곳곳을 누비며 취재하고 뉴스를 만드는 사진기자의 삶은 늘 분주했다.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사진을 업으로 삼을 수 있어 좋았고, 기자로서 뿌듯한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항상 사진기자가 아닌 ‘사진작가’로서의 꿈을 품었다는 강재훈 작가.
“직업으로서 사진기자도 만족스러운 선택이었지만, 원래 꿈은 사진작가였어요. 그 꿈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바쁜 와중에도 개인 작업을 병행하기 시작했죠. 그 작업이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골목 안 풍경, 그 이후의 이야기
잦은 출장과 바쁜 일정 속에서도 꾸준히 개인 작업을 해온 강재훈 작가는 지금까지 17번의 개인 전시와 11권의 사진집을 출간하며 사진작가로서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관심 밖의 대상을 쫒아 자신만의 방식과 표현으로 큰 울림을 주고 있다. 특히 지난 2008년부터 작업한 골목 사진은 故 김기찬 작가를 떠올리게 해 더욱 특별하다. “김기찬 선생님은 존경하는 대선배님이죠. 그분의 사진과 작업 방식을 보며 간접적으로 많은 것을 배웠어요. 제가 전시회를 열면 말없이 찾아와서 보고 가곤 하셨죠.”
평생 골목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후배 사진작가들에게 귀감이 된 김기찬 작가. 2005년 들려온 그의 타계 소식은 너무나 갑작스러웠기에 안타까움 역시 컸다. 강재훈 작가가 골목을 사진에 담아야겠다고 다짐한 건 그로부터 3년쯤 흐른 뒤였다. 매일 출퇴근하며 오가던 익숙한 골목이 김기찬 작가가 작업했던 바로 그 공간이었기 때문. 용산구, 마포구, 중구 세 개 지역이 만나는 지점인 만리동 고개를 중심으로 공덕동, 중림동, 아현동 일대가 김기찬 작가의 골목 풍경 배경이 된 장소다. “제가 일하던 신문사 바로 앞동네예요. 매일 출퇴근하며 보던 곳인데, 언제부터인가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김기찬 선생님이 작업하던 마을과 골목이 사라져가고 있었어요. 안타까운 마음에 카메라를 들었죠.
김기찬 선생님께 헌정하는 마음으로요.” 작업 공간은 신문사에서 도보로 20분 거리. 강재훈 작가는 촬영을 위해 출근을 1시간 앞당겨 김기찬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 주변 골목을 탐색했다. 그것만으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기에 점심을 먹으러 갈 때도, 또 퇴근 후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골목으로 향했다. 그렇게 작업한 시간이 무려 7년이다. “어떤 날은 골목을 걸어가는데, 한 어르신이 말을 거는 거예요. 매일같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니까 궁금하셨겠죠. 본인이 젊었던 시절에도 늘 카메라를 들고 걸어 다니는 사람이 있었는데 요즘은 안 보인다는 거예요. 김기찬 선생님을 떠올리신 거죠.”
그렇게 공들여 작업한 사진은 2016년 사진집 <골목 안 풍경 그후>로 발간됐고, 2019년 <Shadow Alley-그림자 든 골목>이란 주제로 두 번의 개인전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익숙하면서 낯설고, 따뜻하면서도 쓸쓸함이 묻어나는 그의 골목 풍경. 재개발에 밀려 사라져가는 골목의 소소한 풍경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제 또래는 골목에서 뛰놀며 자란 세대입니다. 골목에서 공도 차고, 게임도 하며 시간을 보냈죠. 골목에 돗자리 하나 깔고 앉아 친구분들과 도라지도 까고, 전도 부쳐드시며 정담을 나누시던 어머니 모습도 떠오릅니다. 골목은 많은 걸 나누고 소통하는 공간이었어요. 서로를 보듬어주는 마음, 작은 것 하나도 나누던 정이 넘쳤죠. 그때를 떠올리며 작업했어요.”
기록을 넘어 이야기를 담은 사진
강재훈 작가의 또 다른 수식어는 ‘분교 사진가’다. 지난 30여 년 동안 전국의 사라져가는 분교를 사진에 담아왔다. 그가 분교에 주목한 건, 기자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 또 다양한 사회문제와 역사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1983년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이 발표된 뒤 전국 각지의 작은 학교가 폐교될 위기에 처하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사라져가는 학교를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내 분교를 찾아 떠났다.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 지도 하나에 의지해 전국 산골과 오지를 찾아다닌 세월이 무려 30년이 넘는다. “인터뷰하러 오는 길에 반가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서른 살 된 지방 방송국 기자인데요, 상을 받으러 서울에 온다는 겁니다. 지난 2000년 즈음 강원도 산골 작은 분교에서 만났던 학생이에요. 초등학교 1학년 꼬맹이였던 친구가 어엿한 기자가 된 거죠. 저를 보며 꿈을 키웠다기에 더욱 기특하고 대견합니다.”
강재훈 작가의 작업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다. 초등학교 1, 2학년이었던 아이들이 결혼 소식을 알릴 때까지 인연이 이어졌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 분교 작업에 마음을 쏟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경기도 양평의 한 학교는 78번 찾아가기도 했다고. 그의 사진은 셔터 한 번에 완성된 한 장이 전부가 아니다. 계속해서 얼굴을 비추고, 끊임없이 소통하며, 인연을 맺은 뒤에도 마음을 나누며 진심을 다했던 그의 노력과 오랜 세월 응축된 신뢰의 산물이기도 하다. 휴일과 휴가를 모두 사진 작업에 반납하고, 틈날 때마다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던 사진가의 삶. 어쩌면 이미 오래전 그가 품은 꿈은 이루어졌는지 모른다.
지난 2020년 신문사에서 정년퇴직했지만, 여전히 그의 삶은 사진과 함께한다. 지난해에는 광진구 마을자치센터에서 진행한 ‘오늘의 기록자’ 프로젝트를 통해 13명의 작가들과 마을의 일상을 기록했다. 프로젝트의 책임 사진가로서 작가들의 사진 교육과 피드백을 담당하며 완성된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그의 이름을 건 ‘강재훈 포토 아카데미’에서 24년째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아카데미 출신 작가들의 모임인 ‘사진집단 포토청’이 매년 개최하는 전시회에도 꾸준히 참여하며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는 강재훈 작가.
“매일같이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갑니다. 오늘 아침에도 한강 변을 산책하며 사진 몇 장 찍었죠. 집 뒤편에 있는 아차산 생태공원도 자주 가는 코스입니다. 늘 출퇴근 때만 봤던 동네 골목을 이제서야 면밀히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 지난 골목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작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천천히 걸으면서 이곳저곳 둘러보는 시간이 즐겁고 재밌습니다.” 여전히 분교와 골목에 관심이 많고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즐겁다. 올해 10월에는 ‘나무’를 주제로 한 사진 에세이집을 발간할 예정이라고. 그가 바라본 세상, 그의 사진이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