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산
가을은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무더위 끝에 찾아온 선선한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 울긋불긋 대지가 물들고 탐스러운 과실이 익어가는, 자연의 변화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산과 함께해온 삶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산림 국가다. 국토의 70%가 산림으로 덮여 있고, 전국에 약 4,440개의 산이 있다고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어느 동네든 쉬이 오를 수 있는 뒷산 하나쯤은 있고, 산을 둘러싼 둘레길도 곳곳에 있다. 서울에도 산이 무려 1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어디서든 고개를 들면 산봉우리가 눈에 들어오고, 언제나 그림 같은 산이 병풍처럼 에워싼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에도 산 이름이 등장할 만큼 언제든 손쉽게 닿을 거리에 산이 있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산과 함께해왔다. 우리나라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의 시작에 ‘산’이 있고, 애국가의 첫 소절에 ‘산’이 등장하는 점만 봐도 그렇다. 아이가 태어나면 탯줄을 잘라 산에 묻었고, 사람이 죽으면 육신을 묻어 산소(山所)라 불렀다. 산을 생명의 근원이라 여긴 데서 비롯된 의식이다. 산은 도읍을 정하거나 주거지를 옮길 때에도 기준이 됐다. 지리산 신선이 된 최치원, 금오산에서 탄생한 김시습의 금오신화 등 산에 얽힌 이야기와 전설도 수두룩하다. 산의 역사가 곧 우리 민족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이유다. 우리는 산과 함께 살아왔고, 여전히 산은 우리 곁에 있다.
등산에 빠진 대한민국
팬데믹 이후 폭발적이었던 등산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고, 계절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 특별한 기술이나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 데다 정해진 시간이나 장소가 따로 없다는 것도 등산의 매력이다. 튼튼한 두 다리와 할 수 있다는 의지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다.
젊은 세대가 등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산의 풍경도 달라졌다. 형형색색 등산복 대신 가벼운 옷차림이 늘어났다. 정상석 앞에서 찍는 인증사진은 필수. SNS에는 산스타그램, 등산 브이로그 게시물이 하루에도 수없이 올라온다. 산행 커뮤니티 플랫폼은 더욱 활발하다. 초보자를 위한 프로그램은 물론 직장인을 위한 야간 산행 프로그램이 특히 인기다. 퇴근 후 산행이, 마치 헬스장에 들르는 일처럼 손쉬워진 요즘이다.
무리 지어 다니는 ‘떼산’ 대신 ‘혼산’을 즐기는 이도 많다. 혼밥, 혼술처럼 혼자 하는 것이 익숙해진 시대이니 혼자 산에 오르는 일이 이상할 것 없다. 나의 체력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고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게 혼산의 매력. 혼자 산행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은 덤이다.
각양각색 산을 즐기는 법
최근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사이에서도 등산이 주목받고 있다. K-팝, K-푸드에 이어 K-등산이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 외국에서는 좀처럼 산을 찾는 일이 쉽지 않기에 도심 속에 산이 즐비한 우리나라 풍경이 외국인에게는 생소하면서 흥미롭게 다가온 것이다. 올해 초 북한산(우이동)과 북악산(삼청동)에 외국인을 위한 ‘서울도심등산관광센터’가 문을 열었다. 등산 장비 대여는 물론, 서울 도심 등산 관광 코스와 정보도 함께 제공해 외국인 관광객의 호응이 매우 높다.
등산이 아니어도 산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산속을 거닐며 풍경을 감상하기에는 하이킹이 제격이다. 내 속도에 맞춰 걷고 호흡하며 자연을 좀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산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백패킹은 오랫동안 산에 머무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다. 깊은 산속에서 마주한 쏟아질 듯한 밤하늘의 별, 산 정상에서 맞이하는 일출의 장관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다. 먼 거리를 며칠에 걸쳐 걷는 트레킹은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체력과 인내심을 필요로 하지만, 여행하듯 산을 탐닉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정해진 방법이나 규칙은 없다. 자신만의 속도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그만이다.
바야흐로 산행의 계절이다. 잠깐 짬을 내 가까운 산에 올라보는 건 어떨까. 울긋불긋 단풍이 수놓은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가을의 절정을 마주할 수 있을 테니.